범죄 소설의 세계에서 흔히 주목받는 것은 범인, 피해자, 혹은 사건을 해결하는 탐정이다. 그러나 상드린 데통브(Sandrine Destombes)의 범죄 청소부 마담 B는 이러한 전통적인 범죄 서사에서 벗어나, 범죄가 발생한 후 남겨진 흔적을 지우는 일을 하는 여성, 블랑슈 바르자크를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이 책은 범죄와 정의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며, 독자들에게 긴장감 넘치는 이야기와 깊은 사색을 선사한다.
흔적을 지우는 자, 블랑슈 바르자크
블랑슈 바르자크는 살인 사건이 발생한 후 범죄의 흔적을 지우는 ‘범죄 청소부’다. 그녀의 일은 사건의 흔적을 없애고, 어떠한 단서도 남기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단순한 청소부가 아니라, 그녀는 각 범죄 현장에서 사건의 배후를 파악하고, 범인의 심리를 분석할 수 있는 독특한 통찰력을 지니고 있다.
이 책의 가장 흥미로운 점은 범죄를 다루는 방식이다. 우리는 흔히 살인 사건이 발생하면 경찰이나 탐정이 나서서 범인을 잡고, 정의를 실현하는 이야기를 떠올린다. 하지만 블랑슈의 역할은 사건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덮는 일이다. 이로 인해 독자는 도덕적 혼란에 빠지며, 그녀의 행동이 과연 정당한 것인지, 그녀가 범죄의 공범인지, 혹은 단순한 전문가인지 고민하게 된다.
독특한 직업과 현실적인 묘사
범죄 청소부라는 직업은 흔히 문학에서 조명되지 않은 분야다. 저자는 이 직업이 가지는 윤리적 문제와 현실적인 어려움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며, 독자들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블랑슈는 단순히 피를 닦고 흔적을 제거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녀는 범죄가 남긴 감정적인 잔해도 함께 처리해야 한다. 현장에서 느껴지는 죽음의 냄새, 피가 스며든 카펫, 가족들이 남긴 흔적들은 그녀에게 심리적 부담을 준다. 이러한 요소들은 단순한 범죄 소설이 아닌, 인간의 심리와 도덕적 딜레마를 탐구하는 깊이 있는 이야기로 발전한다.
예상치 못한 사건과 반전
소설은 블랑슈가 평소와 다름없는 청소 의뢰를 맡으며 시작된다. 그러나 어느 날, 그녀가 맡은 한 사건에서 예상치 못한 단서를 발견하게 되면서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이 사건은 단순한 범죄 청소 작업이 아닌, 그녀 자신의 과거와 연결된 중요한 퍼즐 조각이 된다. 블랑슈는 점점 더 깊이 사건에 개입하게 되며, 본래의 역할을 넘어 진실을 찾으려는 욕망에 사로잡힌다.
상드린 데통브는 긴장감 넘치는 전개와 치밀한 서술로 독자를 사로잡는다. 초반부는 블랑슈의 일상과 그녀의 직업적 윤리를 보여주는 데 집중하지만, 중반부터는 사건이 빠르게 전개되며 예상치 못한 반전들이 연이어 등장한다. 이를 통해 독자는 블랑슈와 함께 범죄의 세계로 깊이 빠져들게 된다.
범죄와 도덕적 회색 지대
범죄 청소부 마담 B는 범죄 소설이지만 단순한 ‘선과 악’의 구도를 따르지 않는다. 블랑슈는 범죄를 직접 저지르지는 않지만, 범죄의 일부를 정리하는 일을 한다. 그렇다면 그녀는 도덕적으로 중립적인 인물일까, 아니면 범죄의 동조자일까?
이 소설은 범죄를 목격한 사람, 혹은 그것을 덮는 사람이 과연 어느 정도까지 책임이 있는지를 묻는다. 블랑슈는 범죄자들을 돕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일에 대한 프로페셔널리즘을 유지하고자 하지만, 그 과정에서 결국 도덕적 회색 지대에 발을 들이게 된다.
영화적인 서술과 몰입감
상드린 데통브의 문체는 매우 시각적이며, 독자가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범죄 현장의 묘사, 블랑슈의 심리적 갈등, 도시의 어두운 분위기는 마치 한 편의 느와르 영화를 연상시킨다. 특히, 그녀가 청소하는 과정에서의 세세한 디테일과 묘사는 실감 나며, 긴장감을 더욱 높여준다.
소설의 몰입감은 상당하다. 저자는 불필요한 설명을 배제하고, 사건의 본질과 캐릭터의 감정에 집중한다. 덕분에 독자는 블랑슈의 시선을 따라가며, 그녀의 심리 변화와 사건의 진상을 함께 탐구하게 된다.
결말과 여운
범죄 청소부 마담 B의 결말은 예상 외의 방향으로 흘러간다. 독자는 블랑슈가 결국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긴장 속에서 지켜보게 되며, 마지막 장을 덮을 때 깊은 여운을 남긴다. 이 작품은 단순한 범죄 스릴러가 아니라, 인간의 심리와 사회적 도덕성을 고민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마무리하며
범죄 청소부 마담 B는 범죄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뿐만 아니라, 인간 심리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에게도 강력히 추천할 만한 작품이다. 범죄와 정의, 윤리와 현실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주인공 블랑슈 바르자크의 이야기는 단순한 스릴러를 넘어 깊은 사색을 유도한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우리가 흔히 지나치는 범죄의 뒷면, 그리고 그것을 정리하는 사람들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될 것이다. 스릴러와 심리 서사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반드시 한 번쯤 읽어볼 가치가 있는 소설이다.